《버그는 나보다 오래 산다》

2025. 6. 30. 08:29IT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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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분명히 고쳤다  
그 버그  
콘솔창도 잠잠했고  
화면도 잘 돌아갔다  
그래서  
나는 안심하고 잤다  

그런데 아침에 열어보니  
그놈이 다시 거기 있다  

아무 일도 안 했는데  
어제 전혀 없던 오류가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당당하게 서 있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걸까  
다시 롤백했다가  
다시 커밋했다가  
다시 구글에 검색했다가  
다시 혼란에 빠졌다가  

오후엔 동료한테 물어봤다  
“혹시 이거 너가 수정한 거야?”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나도 손 안 댔어”  

그 순간  
이건 살아 있는 버그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스로 나타나고  
스스로 숨어 있다가  
사람이 혼자일 때  
조용히 고개를 든다  

간혹  
주석으로 남긴 내 흔적을 보면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미워한 건 아닐까  
의심도 든다  

그리고 결국  
버그는 해결된다  
내가 뭔가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IDE를 껐다 켰더니 되더라  

그럼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왜 되는지 모른다"  

이건 어쩌면 더 무서운 상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코멘트를 남긴다  

// 아직도 왜 되는지 모름  
// 내일 아침에도 잘 되길 바람  
// 만약 안 되면, IDE 탓

내 코드엔 나의 흔적이 있고  
나의 피로가 있고  
가끔은 웃음도 있다  

그건 그 버그가  
나보다 오래 살았기 때문이고  
가끔은  
나보다 더 똑똑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 고친 버그가  
내일 또 살아나도  
주석 하나 더 달아두면 되니까
// 버그와 평생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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