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배가 벌써 이렇게 나왔구나.
16주째 접어든 요즘,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모니터를 바라보며 문득 현실감이 밀려든다. 저 작은 생명이 정말 우리 아이가 될 것이고, 나는 정말 아빠가 되는 것이구나.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날이 늘었다. '남성 육아휴직', '아빠 육아휴직' 이런 키워드들로. 32살, 개발자 8년차. 전세 대출에 매달 나가는 이자만 생각해도 숨이 막힌다. 그런데 육아휴직이라니.
솔직히 말해서, 처음엔 '남자가 굳이 육아휴직까지 써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내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매일 밤 허리 아프다며 뒤척이는 모습, 입덧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건 혼자 감당할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육아휴직에 대한 공부를.

250만원. 그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2025년 육아휴직 급여 인상 소식을 봤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 정말?
내가 조사해본 바로는 이렇다. 첫 3개월은 월 최대 250만원, 4~6개월은 200만원, 그 이후는 160만원. 기존에 25%를 나중에 받던 사후지급제도 없어져서, 휴직 기간 중에 바로바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250만원이면... 내 월급의 3분의 2 정도는 된다. 전세 대출 이자 90만원 빼고,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이 160만원. 빠듯하긴 하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더 놀라운 건 6+6 부모육아휴직제였다.
아내랑 내가 둘 다 육아휴직을 쓰면, 6개월 동안 급여의 100%를 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1개월째 250만원부터 시작해서 6개월째엔 450만원까지. 우리 부부 월급을 합치면...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6개월간 거의 4천만원 가까이 되었다.
"여보, 이거 봐봐."
그날 밤 아내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아내도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야? 이게 진짜야?"
우리 둘 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육아휴직은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운 선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하지만 현실은, 글쎄...
부푼 마음으로 회사 동료들에게 슬쩍 물어봤다. "혹시 우리 회사에서 남자가 육아휴직 쓴 사람 있어요?"
"응? 남자가? 음... 없는 것 같은데?"
팀장님께도 조심스럽게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내봤다. "아, 그런 게 있긴 하구나. 근데 우리 팀에서는 처음이겠는데?" 하시면서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통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남성 육아휴직을 쓴 사람 중 85%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까 봐 걱정했다'고 답했다더라. 300명 이상 대기업에서는 95%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 회사는 직원이 50명 정도 되는 중소기업이었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며칠 밤을 새워가며 작전을 짰다.
작전 1: 미리미리 알리기
일단 팀장님께 정식으로 말씀드렸다. "내년에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휴직을 써보고 싶습니다." 갑작스럽게 통보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알려드린 것이다.
작전 2: 인수인계 계획서 미리 작성
내가 맡고 있는 모바일 앱 프로젝트들을 정리해서, 누가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 정도면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고 팀장님께 보여드렸다.
작전 3: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 어필
"2025년부터는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쓰면 회사에서도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요. 월 40만원씩 받으실 수 있습니다."
팀장님 표정이 조금 밝아지는 게 보였다.
서류와의 전쟁, 그리고 의외로 간단했던 신청
막상 신청하려니 서류가 정말 많더라. 처음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하루 종일 고용보험 홈페이지만 들락거렸다.
다행히 내 조건은 문제없었다. 회사에 다닌 지 7년이 넘었고, 고용보험도 당연히 가입되어 있었으니까. 만 8세 이하 자녀라는 조건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당연히 해당한다.
필요한 서류들을 정리해보니 이 정도였다:
- 육아휴직 급여 신청서
- 육아휴직 확인서 (회사에서 "이 사람이 정말 육아휴직 합니다" 하고 확인해주는 것)
- 임금대장 (월급 얼마 받는지 증명하는 것)
- 가족관계증명서 (아이가 정말 내 자녀인지 증명하는 것)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제일 좋은 건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는 거였다. 고용보험 누리집(www.ei.go.kr)에서 집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굳이 관공서에 가서 번호표 뽑고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육아휴직을 시작한 후 1개월이 지나야 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매달 신청해야 한다. 까먹으면 안 되니까 핸드폰 달력에 미리 알림을 설정해뒀다.
2025년부터는 출산휴가랑 육아휴직을 한 번에 신청할 수 있게 바뀐다고 한다. 나중에 둘째 낳을 때는 더 편할 듯.

현실은 돈이다. 냉정하게 계산해보자
아무리 마음이 앞선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건 돈이었다.
엑셀을 켜고 냉정하게 계산해봤다. 내 월급은 세전 380만원. 육아휴직 급여는 첫 3개월 250만원이니까... 월 130만원이 부족하다.
- 전세 대출 이자: 90만원
- 관리비: 15만원
- 아내 용돈: 30만원
- 식비: 50만원
- 기타 생활비: 40만원
총 225만원. 250만원에서 225만원을 빼면 25만원. 겨우 25만원 남는다. 아기 용품 사야 하고, 병원비도 들어갈 텐데...
솔직히 말해서 빠듯했다.
하지만 아내랑 둘 다 6+6 제도를 쓴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우리 부부 월급을 합치면 700만원 정도 되는데, 6개월간 100% 지급받으면 총 3,900만원. 평소 우리 부부가 6개월간 벌어들이는 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거면 할 만한데?"
부업도 할 수 있다더라
더 알아보니, 육아휴직 중에도 부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주 15시간 이내, 월 150만원 이내에서.
개발자라는 직업의 장점이 여기서 나타났다. 집에서도 프리랜서 프로젝트를 받거나, 온라인 강의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 아이 재우고 난 후에 2-3시간씩 일한다면, 월 100만원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250만원 + 100만원 = 350만원. 이 정도면 평소 생활비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고정비 칼질하기 프로젝트
그래도 불안해서 가계부를 다시 들여다봤다. 없어도 되는 것들이 꽤 있더라.
- 넷플릭스, 유튜브 프리미엄 등 구독 서비스: 월 2만원 절약
- 핸드폰 요금제 다운그레이드: 월 1만원 절약
- 보험료 재검토: 월 5만원 절약
- 외식비 줄이기: 월 15만원 절약
총 23만원을 더 절약할 수 있었다. 작은 돈 같지만, 육아휴직 6개월이면 138만원이었다.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런데 진짜 걱정은 따로 있었다
돈 계산은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진짜 걱정은 따로 있었다.
6개월 동안 회사를 비우면, 내가 돌아갔을 때 내 자리가 있을까?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개발 분야에서 6개월이면 적지 않은 시간이다. 새로운 프레임워크가 나올 수도 있고,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도 완전히 바뀔 수 있으니까.
밤에 이런 생각하다 보면 잠이 안 왔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그래서 나름의 대책을 세웠다.
첫째, 기술 트렌드는 계속 챙기자.
아이 재우고 나서 30분이라도 개발 관련 블로그나 유튜브를 보기로 했다. 새로운 기술 동향을 놓치지 않으려고.
둘째, 온라인 강의를 들어보자.
평소에 관심 있었던 AI나 머신러닝 관련 강의를 들어볼 기회로 삼자. 회사에서는 바빠서 못 했던 것들을.
셋째, 동료들과 완전히 단절되지는 말자.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근황도 묻고, 회사 상황도 파악하고.
사실 이런 계획들이 실제로 잘 될지는 모르겠다. 신생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최소한 마음의 준비는 해두고 싶었다.
복귀 준비 체크리스트
육아휴직이 끝나기 한 달 전쯤에는 이런 것들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팀장님께 복귀 일정 최종 확인
- 그동안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들이 진행됐는지 파악
- 어린이집 입소 준비 (이게 제일 중요할 듯)
복귀 첫 주에는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적응하자. 6개월 만에 복귀하는 거니까, 처음엔 업무 감각이 떨어질 수도 있을 테고.

선배들의 이야기
고민이 깊어질수록 경험자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육아휴직을 써본 아빠들을 찾아다녔다.
"미리미리 얘기하는 게 중요해요"
중견기업에서 6개월간 육아휴직을 쓴 김형(35세)과 카페에서 만났다.
"전 임신 3개월 차부터 팀장님께 계속 말씀드렸어요. '내년에 육아휴직 쓸 예정입니다' 하고. 처음엔 '아, 그래?' 하시더니, 몇 번 더 얘기하니까 '아, 진짜 하려는구나' 하시면서 진지하게 들어주시더라고요."
김형이 말하길, 갑작스럽게 통보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상사 입장에서도 업무 분담을 다시 짜야 하고, 대체 인력을 구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돈은 정말 빠듯해요"
IT 회사에서 일하는 박형(32세)의 조언은 더 현실적이었다.
"육아휴직 급여만으로는 진짜 빠듯해요. 저는 평소 생활비의 1.5배 정도를 미리 모아뒀거든요. 아기 용품 사는 데도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고, 병원비도 계속 나가고. 2025년에 급여가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부족할 거예요."
실제로 박형은 육아휴직 중에 프리랜서 일을 조금씩 해서 부족한 생활비를 메웠다고 했다.
"아내가 고마워하더라고요"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이 말이었다.
"육아휴직 하기 전에는 솔직히 '내가 굳이?' 싶었거든요. 근데 직접 해보니까... 진짜 힘들더라고요. 아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지금은 회사 복귀했지만, 여전히 집에서 육아 분담하고 있어요. 우리 부부 관계가 훨씬 좋아졌어요."
이 말을 듣고 나니, 육아휴직이 단순히 6개월 쉬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정말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도전하기로 했다
아직도 불안하다. 솔직히 말해서.
경제적으로도 빠듯하고, 회사에서 어떻게 볼지도 걱정되고, 6개월 후에 내가 정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보겠나?'
개발자로 일하면서 항상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도전해왔는데, 아빠가 되는 것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도전 중 하나 아닐까. 육아휴직도 그런 도전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보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주변에서 "남자가 굳이 육아휴직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2025년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고, 제도도 계속 개선되고 있다. 언젠가는 남성 육아휴직이 당연한 일이 될 텐데, 내가 그 첫 번째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내가 고마워할 것 같다.
"여보, 정말 고마워. 나 혼자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6개월의 경제적 부담쯤은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
아직 16주.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반년 정도 남았다.
그동안 더 꼼꼼히 준비하고, 회사 사람들과도 잘 소통해서, 우리 가족에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보려고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예비 아빠들이 있다면, 함께 도전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먼저 시작하면, 뒤따라 올 아빠들에게는 조금 더 쉬운 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이 글에서 언급한 모든 제도 정보들은 고용노동부와 정부24, 고용보험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이 많이 섞여 있으니, 실제 신청 전에는 꼭 공식 사이트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급여 계산이나 신청 절차는 개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고용센터나 회사 인사팀에 정확한 상담을 받아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앞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실제 육아휴직 경험담도 브런치에 올려볼 예정입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예비 아빠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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