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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 700명의 노인이 전하는 사랑의 진실

by Yong Dae 202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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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의문스러워진 결혼이라는 것

최근 주변에서 결혼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로 '죽도록 사랑하는' 감정만으로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첫눈에 반한 사랑이 60년, 70년을 버틸 수 있는 걸까? 이런 의문들을 품고 있던 중 만난 책이 칼 필레머(Karl Pillemer)의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이다.

코넬대학교 교수이자 노년학 전문가인 저자가 700명의 장기 결혼 부부들을 만나 직접 들은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제목부터 묘한 울림을 준다. '처음부터 알았더라면'이라는 말 속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깨달음이 담겨 있을 것 같았다.

30년에서 70년까지, 진짜 경험담의 무게

평균 43년의 결혼 생활을 이어온 사람들의 조언은 이론서와는 차원이 달랐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겪고, 달 착륙을 보며,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법을 배운 이들의 이야기에는 인생의 모든 변화를 함께 견뎌낸 무게가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68세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제시카 크루즈(Jessica Cruz)의 조언이었다. 그녀는 파트너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도미노 같은 게임을 함께 해보라고 했다. "그를 만나서 도미노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알았어요. 게임을 하는 사람을 관찰하면 그들의 성격을 잘 파악할 수 있거든요."

승리와 패배, 압박감을 어떻게 다루는지 관찰하는 것이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고백이나 로맨틱한 데이트보다, 평범한 일상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우정이 사랑보다 중요하다는 발견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조언은 "끌림보다는 우정을 택하라"는 것이었다. 700명의 노인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오래가는 결혼의 비결이 열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깊은 우정에 있다는 점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하라. 우정이 없다면 결혼하지 말라"는 단순명료한 조언은 처음에는 너무 현실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이해가 갔다. 열정은 시간이 흐르면 변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노인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대화'였다. 과묵한 파트너와의 결혼은 관계에 치명적이라고 할 정도로, 평생을 함께 살아갈 사람과는 무엇보다 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50 대 50이라는 환상을 버려라

또 하나 충격적이었던 것은 "점수를 매기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많은 젊은 부부들이 '나는 이만큼 했는데 저 사람은 저만큼밖에 안 했다'며 계산하는 습관이 있는데, 노인들은 이런 태도가 결혼 생활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대신 제안하는 것은 '주는 경쟁'이었다. 각자가 상대방이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려고 노력할 때, 역설적으로 둘 다 더 많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지혜가 담긴 조언이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많은 싸움이 누군가가 배고플 때 일어난다"는 실용적인 팁도 있었다는 점이다. 진지한 관계 상담과는 거리가 먼, 할머니가 손자에게 해줄 법한 소박한 조언이지만, 수십 년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누구든지 이것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책에 등장하는 부부들도 모두 완벽하지 않았다. 끔찍한 시간들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헤어질 뻔한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끝에서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숭고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700명의 노인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이것이었다. 완벽한 사랑은 없지만, 완벽하지 않은 사랑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중요한 건 서로를 바꾸려 하지 말고, 함께 변화해 나가는 것이라는 깨달음.

30대인 나에게는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하며 후회 섞인 조언을 하게 될 날이 올까? 그때까지는 이 책에 담긴 700명의 지혜를 마음 한편에 새겨두고, 조금씩 배워가며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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